영혼을 잃은 것 같아 너는 말했고
영혼이 이른 것 같다고 나는 들었지
꿈이라는 확신으로
함께 뛰어내린 낭떠러지들
꿈의 모순들로부터 시작되었던
아침의 확신들
밥은 좀 먹었니
잠은 좀 잤니
비 오는 날의 분수대를 지나
아침 드라마 속의 밤거리를 지나
밥과 밥으로부터 멀리
잠과 잠으로부터 멀리
거리를 메운 자동차들의 클랙슨이
동시에 울리는 것 같다고
방에서 소리 내는 건 냉장고뿐이라
냉장고에 기대어 잤다고
겨울에 태어나
겨울에 몸을 숨긴 눈사람들처럼
새벽에 태어나면 새벽에
밤에 태어나면 밤에 숨어든 울먹임들
그 시간에 내게 전화했으므로
네가 있을 어둠이 훤했다
밥과 밥을 지나쳐
잠과 잠을 지나쳐
지하 주차장 3층에서 펄럭이는
배추흰나비
팔을 휘저을 때마다
허공에 핏금이 생긴다고
언젠가 목을 맸던 방에서
잠자기 싫다고
영혼을 잃은 것 같다고 너는 말했고
나는 졸며 그 말을 들었지
예식장의 거울들을 지나
주차된 자동차들의 시선을 지나
이목구비를 잃어가는 눈사람들을 지나
징발당한 잠을 지나
밤의 냉장고와 꿈의 계곡들을 지나
우리가 잃어버린 영혼과
우리를 잃어버린 영혼들을 지나
'영원 금지 소년 금지 천사 금지'
문학동네, 2023 |
